영화사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작품은 무엇일까라는 물음에 다수의 평론가들은 주저없이 '시민 케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영화 왠지 우리에겐 한없이 낯설기만 합니다.  

 

시민 케인은 제목보면 딱 아시겠지만, 케인이라는 인물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로서 오손 웰스 감독의 1941년 작품입니다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오손 웰스 감독이 25살 때 만든 데뷔작이죠. 25살의 데뷔작이 영화사에 있어서 한 획을 긋다니!!!

그것도 데뷔작이 말이죠... 제 나이 25살에는 뭐했난 돌아보게 되는 것은 왜일까요. ^^; 

 

그럼 이 영화가 위대한 작품으로 손꼽히니까 흥행에도 성공했을까요?

안타깝게도 흥행면에서는 실패한 작품입니다.

하지만 영화사에 있어 그 영화사적 의의가 분명하므로 지금까지 회자되고 또 회자되는 것이지요. 

 

 

 

 시민케인의 줄거리 

 

시민케인은 케인이라는 인물의 일대기에 눈을 크~게 뜨고 집중하려던 그 순간, 영화의 구조는 매우매우 재미있게도 주인공의 생에 대해 이야기도 꺼내기 전에 그의 죽음부터 조명합니다. 케인이 죽기 전 손에 쥐고 있던 유리공과 그가 남긴 마지막 그 한 마디, 로즈버드!!!!

뭔가 매우 미스테리하면서 궁금해지죠. 대체 저 로즈버드가 뭐야! 뭐길래 이렇게 사람을 궁금하게 만드는 걸까요?

 

 

 

 

 

 

 

 

이제 기자 한명이 나타나 케인을 알고 지내던 사람 5명을 만나면서 그들이 회고하는 방식을 통해 케인이라는 인물을 퍼즐 조각 맞추듯 보여주기 시작합니다. 제일 먼저 탐슨이라는 기자가 찾아간 사람은 케인의 두 번째 부인 수잔 알렉산더 케인이지만 보기 좋게 거절당합니다. 

탐슨은 실망하죠. 왠지 로즈버드로 특종을 잡아낼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있는데 인터뷰를 거절당했으니까요. 

하지만 여기서 멈추면 안 되죠. 그는 기자 아니겠습니까?

 

두 번째로 탐슨은 케인의 후견인이었던 대처의 기념도서관을 찾아갑니다. 

어린시절 집이 가난하고 어려웠던 케인은 어린시절 대처라는 후견인에게 맡겨지게 됩니다. 대처는 기념도서관이 있을 정도로 부자였던 겁니다. 기자 탐슨은 로즈버드에 대한 실마리를 찾기 위해 후견인이었던 대처의 일기를 열심히 찾아 읽고 케인을 입양한 과정을 알게 되죠. 케인이 작고 어리던 어느 날, 그의 어머니는 그를 입양시키기 위해 서류에 서명을 합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무기력하게 바라볼 뿐 말리지는 못합니다.  케인 어머니의 바람이 간절했던 것인지, 입양된 후 케인은 부자 아빠를 만나 인콰이어러 언론사를 인수할 정도의 부자가 됩니다. 

 

언론사를 인수하고 나서 열심히 하는 케인의 모습은 번스틴의 증언으로 엿볼 수 있습니다. 케인은 노동자의 입장에서 수많은 부조리에 대한 고발 기사를 쓰면서 인콰이어러지의 발행 부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해 크게 성공하게 됩니다. 이 성공으로 대통령의 조카와 결혼까지 하게 되죠. 언론과 부를 거머쥐었으니 이제 남은 건 정치! 그는 대통령의 조카였던 에밀리와 결혼까지 골인합니다. 

 

그런데 에밀리와의 결혼생활은 평탄치 않습니다. (이 부분은 릴랜드에 의해 묘사됩니다. )

에밀리와 케인의 결혼생활은 장면을 거듭할 수록 험악한 분위기로 묘사되고 둘의 사이는 더는 가까워질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아까 맨 처음에 탐슨이 만났던 두 번째 부인 수잔과 케인이 사랑에 빠지게 되는 거였죠. 네 안타깝게도 둘은 부정한 사이였습니다. 그래서 에밀리와의 생활은 끝이 나고 하필 정적이었던 게티스라는 인물에게 이걸 들킵니다. 결국 정치 생활에 큰 타격을 입죠. 

 

정치에서 지고 난 케인은 수잔에 집중합니다. 탐슨이 인터뷰를 거절했던 수잔을 다시 찾아가면서 수잔과 케인의 불행했던 결혼 생활을 보여줍니다. 케인의 성취욕이 강한 인물로서 수잔을 유명한 가수로 만들기 위해 열심히 노래를 시킵니다. 하지만 잘 안 되죠.. 목소리는 타고나야 되는 거니까요. 그러다 이 하드 트레이닝을 견딜 수 없던 수잔은 극단적인 시도까지 하게 되고 케인은 오페라 가수로 키워보려고 했던 노력을 그만둡니다. 결국 이들은 헤어지게 됩니다. 

 

케인은 쓸쓸히 대저택에 남게 됩니다. 집사 레이몬드가 그의 모습을 증언해주죠. 마음 둘 곳 없어진 케인은 거칠게 저택의 가구들을 부숩니다. 그러다 발견한 유리공을 보며 '로즈버드'라는 말을 읊조리고 그의 눈에는 눈물이 고입니다. 하지만 레이몬드조차도 '로즈버드'가 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하죠. 결국 기자 탐슨은 대 특종이 될 수도 있었던 로즈버드 수수께끼를 푸는 데 실패합니다. 

 

5명 만났는데도 소득이 없었으니 뭔가 아쉬웠던 기자는 끝까지 사람들과 로즈버드의 정체에 대해 토론을 벌이기도 하지만 결국 건진 건 없었습니다. 탐슨과 사람들이 사라지고 케인이 살았던 제나두 저택의 쓸모없는 물건들은 불태워지고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플래시백과 로즈버드로 내러티브를 엮다. 

 

가장 먼저 살펴볼 것은 영화의 내러티브, 그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입니다. 

영화는 언제나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있고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은 감독마다 다릅니다. 

오손 웰스가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은 케인이라는 인물은 허구의 인물이지만 우리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인간 군상 중 하나입니다.

케인은 매우 성취욕이 강하고 목적 의식이 뚜렷한 캐릭터입니다.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오손 웰스 감독은 매우 영리한 방식을 취합니다. 

 

영화의 러닝타임에 보여 줄 수 있는 것은 제한적입니다. 그래서 영화는 한 사람의 일대기를 보여줄 때 결국 일부 사건을 중심으로 보여줄 수 밖에 없는데 웰스 감독은 케인이 죽은 후의 뉴스릴을 통해 케인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 것이죠

그리고 웰스는 케인이 임종 직전에 외친 '로즈버드'라는 수수께끼로 관객의 시선을 옮긴 후 수수께끼를 풀 단서가 될 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기억을 플래시백으로 구성합니다. 이렇게 모아진 5명의 회고는 단편적이고 파편적인 기억이지만 케인이라는 사람에 대해 짐작해보는 데 부족하지 않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동시에 케인의 일대기를 시간순으로 정리하는 데는 무리가 있을 수도 있지만, 그의 삶에 중요한 순간들에 대해 충분히 이해가 가능합니다. 

 

 

 

영화에서는 인물의 과거를 회상할 때 플래시백 기법을 사용합니다. 

시민 케인에서도 플래시백이 사용되는데, 영화에서 보여준 5번의 플래시백은 급격한 화면전환을 통해 매우 급진적인 느낌의 플래시백을 만들어 냅니다. 그런 급진적 전환 속에서도 관객의 시선은 '로즈버드'를 뒤쫓지만 그들의 회고 속에 '로즈버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케인이 외친 로즈버드는 분명 존재했으나 사람들에게는 부재한 것이었습니다. 

결국 영화의 마지막은 로즈버드가 불에 타면서 비극을 더 극대화시킵니다. 

 

감독은 사람들의 시선을 로즈버드에 고정시켜 관객을 능동적이게끔 만들고 로즈버드에 호기심을 갖게 한 뒤, 플래시백으로 주인공의 삶과 로즈버드의 부재를 보여준 뒤, 영화의 말미에 '로즈버드'의 진짜 정체를 보여주게 한 것입니다. 로즈버드라는 장치의 역할과 그의 플래시백은 영화의 내러티브를 복잡하고도 치밀하게 만들어 영화 구성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큰 기여를 합니다. 이러한 장치는 영화들이 서사적으로 내러티브를 전달했던 방식과는 구별되는 전개방식을 보여줬을 뿐만 아니라, 후대 유주얼 서스펙트의 '카이제 소제'에 영감을 주었고 그의 플래시백은 과거 회상 뿐만 아니라 여러 관찰자의 시점을 통해 전달함으로써 다양한 시각을 관객과 공유하게 하는 등 플래시백이라는 기법의 역할의 지평을 넓혔다는 데 영화사적 의의가 큽니다.

 

 

 

 로즈버드의 주제의식 

 

영리한 기법을 통해 영화를 아무리 화려하게 만든다고 해도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불분명하다면 그 영화는 완전하지 못하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민케인이 비록.. 흥행에는 실패했으나 위대한 영화로 꼽힐 수 있는 것은 그 주제의식에 있다고 봅니다. 

웰스는 영화 도입부에 관객에게 죽기 직전 케인이 외친 '로즈버드'라는 질문을 던지고 영화의 마무리에 '로즈버드'의 정체를 밝힙니다.

로즈버드는 케인이 어린시절 갖고 놀던 썰매, 즉 그가 돌아가고 싶지만 결코 돌아갈 수 없는 순수했던 그의 어린시절인 것이죠.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큼의 부를 가졌던 케인, 그리고 영화 속 내내 무언가를 이루고자 치열하게 살았던 삶 끝자락에서 그가 추억한 것은 사랑하던 여인의 이름도 아니었고, 친구의 이름도 아닌 어린시절 썰매였습니다. 이는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도 의미를 던집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해 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가지만 과연 이것이 진정 우리가 원하는 것인지.. 어쩌면 우리 역시 영화 속 케인처럼 열심히 살아가지만 로즈버드를 놓치고 있는건 아닌지 말입니다. 

 

영화는 끝났지만 시민 케인이 주는 비극의 맛은 음미할 수록 씁니다. 

그가 갖고 싶지만 돌이킬 수 없는 추억, 그리고 사람들 속의 로즈버드의 부재를 보면서 현대인의 파편화된 삶과 실체의 부재. 

그리고 저 역시도 로즈버드를 놓치고 사는 건 아닌지. 이 밤 상념으로 잠을 설치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보며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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